신약성경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거라사 지역의 돼지떼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남깁니다. 레위기에서 명확히 부정한 동물로 규정된 돼지를 왜 유대인들이 사는 지역 근처에서 사육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복잡한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거라사는 데카폴리스라 불리는 열 개 도시 연합에 속한 곳으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지역이었습니다. 데카폴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그리스 문화가 중동 지역에 깊숙이 스며든 결과물이었습니다.
거라사 지역의 특수한 지리적 문화적 배경
거라사는 갈릴리 호수 동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오늘날 요르단 북부에 해당합니다. 이 지역은 순수한 유대인 거주지가 아니라 이방인들과 혼재된 다문화 지역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헬레니즘 문화를 받아들인 그리스계 주민들이 상당수 거주했으며 이들은 유대 율법의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로마군 주둔지가 가까이 있었고 무역로가 지나가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적인 성격을 띠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동물이었던 돼지는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에게는 주요 식량 자원이었습니다. 특히 로마군은 돼지고기를 병사들의 식단에 필수적으로 포함시켰기 때문에 군대 주둔지 근처에서는 돼지 사육이 활발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돼지를 사육하게 만든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경제 시스템과 돼지 사육의 필연성
로마 제국 시대 팔레스타인 지역은 제국의 경제 시스템에 깊이 편입되어 있었습니다. 로마는 피정복 지역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고 주민들은 이를 납부하기 위해 현금 수입을 창출해야 했습니다. 전통적인 농업만으로는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상품 작물이나 가축을 키워 판매하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돼지는 다른 가축에 비해 번식력이 뛰어나고 사육 기간이 짧아 빠른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제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 소나 양은 성장에 2년 이상 걸리지만 돼지는 6개월에서 1년이면 출하가 가능했습니다
-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아 생산성이 다른 가축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 잡식성이라 사료 비용이 적게 들고 음식물 쓰레기로도 사육할 수 있어 경제적이었습니다
- 로마 시장에서 돼지고기 수요가 매우 높아 안정적인 판로가 보장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과 돼지 사육자의 정체성
그렇다면 거라사에서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성경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돼지 치는 자들이 마을로 도망가 소식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이 정통 유대인이었다면 회당에서 완전히 추방되고 공동체에서 배척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이는 돼지 사육자들이 이방인이거나 혹은 유대 율법을 엄격히 지키지 않는 헬라파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 사육자 유형 | 율법 준수 정도 | 사회적 위치 |
|---|---|---|
| 그리스계 이방인 | 율법의 제약을 받지 않음 | 데카폴리스 주류 상인층 |
| 헬라파 유대인 | 느슨한 율법 해석 | 경제적 생존을 위해 타협 |
| 로마 군인 출신 | 율법과 무관 | 제대 후 정착한 사육업자 |
| 사마리아인 | 독자적 종교 전통 | 유대인과 구별되는 집단 |
경제적 생존과 종교적 신념 사이의 갈등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경제 상황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로마의 가혹한 세금 징수와 헤롯 왕가의 사치스러운 건축 사업으로 인해 일반 백성들의 삶은 극도로 궁핍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 정결함을 지키는 것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사이에서 많은 이들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특히 데카폴리스 같은 경계 지역에서는 유대 정통파의 감시가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경제적 이유로 율법을 어기는 선택을 하기가 더 쉬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경제 구조 자체가 피지배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타협을 강요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또한 거라사 지역은 유대교 율법학자들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이라는 지리적 장벽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로 유대 중심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변방 지역까지 율법 준수를 강제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환경적 요인이 율법을 어기면서도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배경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들도 내적으로는 죄책감을 느꼈을 수 있지만 현실적인 경제적 압박 앞에서는 생존이 우선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돼지 사육이 주는 신학적 메시지
복음서에서 거라사 지역의 돼지떼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깊은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고 귀신들이 돼지떼에게로 들어가 바다에 빠져 죽는 이야기는 여러 상징적 의미를 내포합니다. 부정한 영이 부정한 동물에게로 옮겨갔다는 점은 유대인 청중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율법을 어기는 행위가 결국 큰 손실로 이어진다는 교훈도 담겨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돼지 주인들과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께 자기 지역을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영적 자유보다 경제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2천 마리나 되는 돼지떼의 손실은 그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이었을 것입니다. 거라사 지역 사람들은 한 사람의 온전함보다 공동체의 경제적 안정을 선택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신앙의 원칙과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예수님 당시 돼지 사육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복음서의 메시지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